추국의 수도, 바인 차강Баян Цагаан白原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 게르터. 약 천 년 이상 전부터 칸이 거주하였던 곳으로 추정되는 초거대 게르 두 채와 인근의 상대적 소규모 게르 수십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던 흔적이 마치 원형 요새처럼 드러나 있는 곳이다. 그중 중심부의 발굴은 거의 끝나갔기에 슬슬 최외곽에 위치한 자그마한 게르, 임시명 베-13호의 안쪽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발굴 초기에야 지층을 갈아엎어야 했기에 각종 중장비들로 시끌벅적했으나, 게르의 흔적이 온전히 드러난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랐다. 굴착기라든지 기중기라든지 하는 거대하고 시끄러운 장비들은 철거된지 오래고, 이제는 다들 하나라도 깨지거나 유실될라 조심조심 작업을 이어갔다. 발굴단은 켜켜이 쌓인 생활 흔적과 퇴적물을 손으로 직접 벗겨내고, 채집하고, 분석했다.

이들 발굴단은 추국의 고고학 권위자, 오르사흐Урсах 교수가 이끌고 있었다. 오후 네 시에 오늘자 강의를 마친 뒤 퇴근하는 것이 아닌 현장으로 재출근을 한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발굴 작업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수업까지 해야 한다니. 그나마 그가 교수직을 맡고 있는 삼지대학교가 바인 차강의 바로 북동쪽에 위치한 이실 오욘Исил Өөн森智에 있어 이곳과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기껏해야 자동차로 한두 시간 거리이니. 저쪽 경국 근처에 위치한 계주界州대학교라도 갔으면 어쩔 뻔 했는가.

그가 이리 고생하는 것은 다 총장과의 계약 때문이었다. 초대 칸의 게르터가 지니는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열과 성을 다해 설명했는데도 이런 대우라니. 그래도 결국 어떻게든 학과 예산을 편성받았으니 분통이 터지든 말든 그로서는 감사하다며 절을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예산 부족이란 본래 고고학과의 숙명과도 같으니 이정도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라는 생각을 하며, 그는 조금 우울감을 느꼈다.

교수는 근래 신고고학이라는 분야에 빠져 있었다. 최근 경국 문경文景대학교에서 제창된 학문인데, 유물을 통한 문화와 생활사 복원에 집중하던 전통고고학과는 달리 인류학과 연계함으로써 당시의 사회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의의를 두는 분야였다. 오르사흐 교수는 경국의 학회란 학회는 죄다 돌아다니며 신고고학을 체득했다. 이제, 이 신기법을 자국의 문화유산에 적용할 차례였다.

“저, 교수님, 저기이…”

이런저런 포부를 다짐하던 그때, 한 발굴단원(오르사흐 교수 연구실의 석사과정생 중 한 명이다)이 구석진 곳에서 진흙으로 덮여 있는 함을 조심스레 가리켰다. 멀찍이서 손전등으로 비추어 살펴보니 그저 일반적인 목함처럼 보였다. 특별할 것 없는 형태에 장식도 없고 마감도 그다지 썩 좋지는 않은, 정말 일반적인 보관함. 발견된 장소도 초거대 게르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만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아, 1세기경 양식의 직육면체형 목함이로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아뇨, 그게…! 혹시나 싶어 확인해 보았는데 모리트 칸의 직인 같은 게…?”

“…!”

모리트 칸이라는 말에 교수가 가까이 다가갔다. 모리트 칸, 고대 추국을 이끈 칸들을 통칭하는 말.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생몰이나 즉위연도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으나, 연국의 기록과 대조해 보자면 추국은 왕에 대응되는 “백호", 또는 “모리트 칸"이라는 존재가 적어도 수백에서 어쩌면 수천 년간 통치해왔음이 자명했다. 아무리 장수하는 요괴라 해도 당시의 의료 수준과 평균 수명을 고려해 보자면 지나치게 긴 기간이므로, 요괴 서넛 또는 비요괴 수십 명에 의해 그 이름이 이어져 내려온 것임은 자명했다. 연국의 기록이 틀렸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으나 일 단위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 무슨 수로 조작되었을까.

그런데, 그런 모리트 칸의 직인이 직접 담긴 것이 이런 변두리에 있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단장은 함의 상단에 찍힌 직인을 직접 꼼꼼히 확인했다. 흐릿하게 남아 있는 발톱 자국. 그 크기와 각도가 고대 시대에 만들어진 공문서에 흔히 남은 자국과 일치했다. 즉, 이 함은 모리트 칸과 관련이 있음이 확실했다. 그런데 그것이 문서 기록고가 아닌 왜 이런 구석진 곳에서?

단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몇 가지 가능성이 머리를 빠르게 관통했다.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보관된 문서라면 고대 추국이 지닌 수많은 비밀을 드러낼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고대 시대의 다른 국가들에 대한 정보까지 있을지도. 연국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일지도 모르긴 했지만, 그의 직감은 언제나 꽤 좋은 편이었다.

고대 추국, 고대 문명, 고대 사회, 고대 세계. 사실 고대라는 것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국가마다 그 시기나 용어가 조금씩 다르기에, 그 시기의 유물은 더더욱 가치가 있었다.